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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캄보디아 전쟁사 총정리 – 사원 하나로 시작된 60년 갈등

 

“한 사원이 두 나라의 60년 갈등을 만들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에 자리 잡은

‘프레아 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은 그저 고대 크메르 시대의 유적 중 하나였지만,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동남아에서 가장 복잡한 영토 분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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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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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캄보디아 전쟁사 총정리 – 사원 하나로 시작된 60년 갈등
태국–캄보디아 전쟁사 총정리 – 사원 하나로 시작된 60년 갈등

 

 

1️⃣ 갈등의 시작 – 프레아 비히어 사원과 국경선

갈등의 시작은 1904년 태국(당시 시암)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경계 확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랑스 측이 작성한 지도를 기준으로 국경이 설정되었는데, 그 지도상 프레아 비히어 사원은 캄보디아 영토에 위치했습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는 태국 국경선에 더 가까웠고, 양국 모두 사원을 자신들의 문화유산으로 주장하게 됩니다.

 

1950년대 이후, 사원은 상징적 의미를 넘어  “민족 정체성과 주권의 상징”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이후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캄보디아의 손을 들어주며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에 있음을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태국은 판결에 불복하며 ‘접근 도로권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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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세기 전반: 프랑스 식민시대와 영토 문제의 씨앗

프랑스 식민 통치기(1863~1953) 동안 태국과 캄보디아는 여러 차례 국경선을 재조정했습니다. 태국은 1907년 프랑스와의 협정으로 일부 캄보디아 지역을 반환했지만, 지도 작성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했습니다.

 

 

 

이후 냉전이 격화되던 1970년대에는 크메르 루주 정권과 태국 정부 간의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었고, 캄보디아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국경선 통제는 사실상 무력화되었습니다. 태국은 국경지대에 난민촌과 군사 기지를 설치하며, 양국의 국경선은 1980년대 내내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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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캄보디아 전쟁사 총정리 – 사원 하나로 시작된 60년 갈등

3️⃣ 2000년대 이후 무력 충돌의 반복

2008년, 프레아 비히어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자 태국 내부에서는 “캄보디아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는 불만이 커졌습니다. 결국 양국은 국경 인근에 군을 배치하며 2008~2011년까지 4차례의 무력 충돌을 겪습니다.

연도 사건 결과
2008년 7월 유네스코 등재 직후, 국경지대 군사충돌 10여 명 사망
2009년 양국군 간 포격전 발생 캄보디아군 승리, 민간인 대피
2011년 2월 태국군 대규모 보복 포격 수십 명 사상자 발생, 아세안 중재 개입

 

이 시기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재심을 요청했고, 2013년 ICJ는 다시 한번 “사원과 인근 지역은 캄보디아의 주권에 속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태국 내 민족주의 세력은 여전히 “사원으로 향하는 도로와 경사면은 태국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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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20년대의 상황 – 다시 불붙은 국경 긴장

2023년 이후 양국 간의 직접적인 교전은 없지만,

국경 인근 군사 배치와 정치적 신경전 

은 여전합니다. 특히 2024년 캄보디아의 새 총리 ‘훈 마넷(훈센의 아들)’ 취임 이후 양국은 협력보다는 견제의 기류로 돌아섰습니다.

  • 태국은 국경지대 순찰 강화 및 감시드론 도입
  • 캄보디아는 국경 마을에 군사기지 확충
  • 양국 모두 국방비를 2025년 기준 약 10% 증액

또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와 미국의 태국 지원 강화가 양국 관계를 더욱 미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즉, “프레아 비히어 사원 분쟁이 미·중 경쟁 구도의 일부”로 변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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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캄보디아 전쟁사 총정리 – 사원 하나로 시작된 60년 갈등태국–캄보디아 전쟁사 총정리 – 사원 하나로 시작된 60년 갈등

5️⃣ 국제사회의 반응과 외교 정세 분석

아세안(ASEAN)은 두 나라의 분쟁을 공식적으로 ‘회원국 간 군사적 충돌’로 규정하지 않으며, 중립적 중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중국과의 군사 협력을 확대하며 태국-미국 동맹과의 균형을 맞추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유엔(UN)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양국에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영토 재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60년이 지난 지금도 프레아 비히어 사원은 ‘누구의 유산인가’라는 질문을 남긴 채 아시아의 대표적 영토 분쟁지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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